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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보다 약하다 : 사각지대에 놓인 남성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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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aru 2024. 6. 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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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여성의 건강 문제에 주목해왔다. 출산과 양육을 위한 각종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 여성 특이 질환에 대한 조기검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남성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짧지만 간과할 수 없는 6년의 수명 격차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80.6세로 86.6세인 여성에 비해 약 6년이 짧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대 수준의 성별 수명 격차다. 특히 50대 이후 남성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50대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의 2.3배, 60대는 2.1배에 이른다.

 

 

 

사망 원인 1위 심장질환, 자살률은 여성의 2배

 

 

남성은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 치명적 만성질환의 유병률이 높다. 2021년 기준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인구 10만 명당)은 남성이 62.1명으로 여성(41.8명)의 1.5배였다. 남성의 흡연율(29.9%)이 여성(4.6%)의 6배 이상인 점, 주 2회 이상 과도 음주율도 남성(19.5%)이 여성(6.8%)의 3배 가까이 되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런 건강위험 행동 이면에 자리 잡은 사회 문화적 요인이다. '술 잘 마시는 것이 남자의 허세'라는 인식, 술자리를 매개로 한 비즈니스 관행 등은 남성의 음주를 부추긴다. 야간노동, 교대근무 등 불규칙한 생활습관도 남성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한다.

 

남성의 높은 자살률도 큰 문제다. 2021년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의 2.4배로, 성별 격차가 매우 크다. 경제적 책임감, 감정 표현의 어려움 등이 남성 자살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수면 위의 '전립선', 남성 암 발생률 2위

 

전립선암은 우리나라 남성에게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전립선암 발생률은 2010년 인구 10만 명당 29.5명에서 2019년 55.2명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립선암은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50대 이후 남성은 정기검진을 통해 전립선암 위험을 확인해야 한다.

 

 

 

'몸이 곧 자본' 육체노동자 산재 다발

 

2020년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95.5%가 남성 근로자였다. 건설업, 제조업, 운수업 등 육체노동 분야 종사자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 부실한 안전장치 등이 남성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린다. 산재 사망만이 아니다. 진폐, 난청, 근골격계 질환 등 만성 직업병 또한 대부분 남성 노동자가 감당하고 있다.

 

 

 

'독한 남자' 신화가 부른 참사

 

"남자는 아파도 참는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통념은 남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질병을 참고 견디거나 건강검진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 남성들이 많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2021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 남성의 건강검진 수검률(70.3%)은 여성(76.0%)에 비해 낮았다. 50대 남성은 그 격차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남성의 정신건강도 취약하다. 스트레스 해소나 마음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남성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7.1%)이 여성(11.7%)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남성 건강의 빈틈을 메우는 제도적 노력 필요

 

건강 격차의 상당 부분은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남녀의 체력과 근력, 호르몬 차이 등이 질병 감수성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사회 문화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건강할수록 남자답다"는 고정관념이 남성의 무리한 건강 행동을 부추기고, 남성 외벌이 가구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남성 건강을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할 때

 

 

게다가 남성 건강에 대한 학계와 정책당국의 관심도 부족했다. 그동안 모성 보호나 여성 건강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 건강은 외면해왔던 게 사실이다. 건강보험공단 일반건강검진의 남녀 공통 항목 중 여성에 특화된 항목은 5개인 반면, 남성 특화 항목은 전무하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종합적 남성 건강 대책이 필요하다. 생애주기별 건강 위험요인을 고려한 맞춤형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정기검진 수검률을 높일 유인책도 마련해야 한다. 전립선암, 직업병 등 남성에게 특히 위험한 질환에 대해서는 별도의 예방 교육과 조기 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편견에 맞선 '건강한 남성성' 확립해야

 

 

음주·흡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과로를 예방하는 직장 문화도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성의 건강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억압된 감정, 답답한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상담 서비스나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편견 없는 시선과 균형 잡힌 관심이 필요하다. "독한 남자는 아프지 않다"는 통념을 깨고, 남성도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치료와 요양, 휴식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건강한 남성성'을 사회적으로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