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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본질과 한국인의 종교관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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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aru 2024. 4. 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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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상대적으로 비종교적인 사회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종교에 대해 막연한 기대와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종교를 믿으면 반드시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과연 종교의 본질이 정말 그러한 것일까?

 

본 논고에서는 철학, 신학, 역사학적 관점에서 종교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 보고자 한다.

 

 

 

 

신과 인간의 위계적 관계

 

 

 

 

대부분의 종교는 신과 인간의 수직적, 위계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기독교의 경우 성경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창조주이자 심판자로 묘사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지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로 인해 타락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인간은 근원적으로 죄의 존재가 되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슬람교 역시 유일신 알라 앞에 인간은 복종하고 헌신해야 할 존재로 규정된다. 쿠란에서 알라는 "너희를 창조한 분이시며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수라트 알-후즈라트, 16절)으로 묘사된다. 인간이 알라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법도를 준수하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로 강조된다.

 

힌두교에서는 브라만, 아트만, 마야 개념을 통해 우주적 실재와 개별자아의 관계를 설명한다. 깨달음을 통해 마야에서 벗어나 브라만과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게 최종 목표로 제시된다. 요가와 명상은 개인이 신적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 방법이다.

 

이처럼 초월적 절대자로서의 신 관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의 핵심을 이룬다. 신이 우주만물의 근원이고 창조자라면, 인간은 그에 의존하고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종교와 윤리의 관계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신의 명령과 가르침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종교는 신이 제시한 윤리 규범의 준수를 신도의 의무로 강조한다. 기독교의 십계명, 불교의 오계, 유교의 오륜 등이 대표적이다. 각 종교마다 세부 내용은 다를지언정, 살생 금지, 정직과 신의 지키기 등 기본적인 윤리 원칙은 상통한다.

 

문제는 이런 윤리의 근거와 동기가 신의 권위에만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신에 대한 믿음과 복종심이 약화될 경우, 윤리적 기반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가시화된 현상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붕괴가 인간을 허무주의로 이끌 것이라 경고했다.

 

반면 칸트는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닌 '실천이성'에 의거한 윤리를 정초하려 했다. 그에 따르면 도덕법칙은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게 보편타당하며, 그 자체로 순수한 동기가 된다. 따라서 신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옳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와 도덕의 분리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종교가 옳은 행위에 대한 강력한 심리적 동기를 제공해 왔음은 분명하다. 신에 의한 상벌,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등은 윤리 실천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내면화된 신앙심은 자발적 선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와 윤리는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한국의 종교관과 그 한계

 

 

 

 

상기한 종교의 속성을 염두에 둘 때, 한국인들의 종교관은 다소 편향된 면이 있다. 유교 전통의 영향으로 현세 지향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타계관은 상대적으로 약해서 사후세계나 종말론에 대한 믿음이 적은 편이다. 유교의 천 관념, 무속신앙, 샤머니즘 등 토착신앙의 영향으로 신과 인간의 위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특히 한국 개신교의 발달 과정을 보면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난다. 초기 선교사들은 기독교 복음을 전하면서도 계몽주의, 민족주의 담론과 결합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민중과 함께 근대화, 독립운동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는 한편, 현실 문제 해결에 치중하는 교회상을 낳았다. 이후에도 물질적 축복, 신유, 적극적 선교 등을 강조하는 기복신앙 경향이 대두되었다.

 

물론 이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쟁과 빈곤을 겪은 민중에게 종교는 위안과 희망의 원천이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물질적 열망을 충족시켜 줄 심리적 지지대가 되기도 했다. 일부 교회는 사회봉사와 구제 활동으로 공동체에 기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심보다 현세적 기복에 치우친 신앙은 종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며

 

 

 

 

지금까지 종교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 윤리적 함의 등을 살펴보았다. 철학적, 신학적 논의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자 섬김을 받아야 할 절대자로 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윤리 역시 신의 명령이나 가르침에 근거하여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종교가 인간의 복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피상적인 이해다.

 

한국의 경우 민족종교의 부재, 토착신앙과의 혼합, 급격한 근대화 등으로 인해 다소 세속화된 종교관이 형성되었다. 기복신앙과 물량주의에 경도된 일부 개신교 교회의 행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기층 민중의 절실한 현실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종교의 영성을 약화시키고 탈종교화를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건전한 역할을 수행하려면, 물질이 아닌 정신적 가치의 추구, 사회적 책임의 수행, 초월성에 대한 겸허한 자세 등이 요청된다. 신을 인간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 실재 앞에 선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하면서도, 신의 피조물로서 고유한 존엄성과 가치를 발견해 가는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이 종교의 참된 가르침을 되새기고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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